2012. 7. 21. 19:32

더위와 장마 끝에 만나서 더 반가웠을까요.

어제 감미식당에 들어서며 먼저 오신 조목사님을 뵙는데 환하게 미소가 지어지는게 많이 반가웠습니다.ㅎ
한달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며 안부를 나누고 함께 곽노순 목사님의 기도문을 돌아가며
드리고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참, 식사시간에 6년이 지난 우리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걸 책으로 남겨보자는 조보성 목사님의 제안이 있어
차차 기획해보기로 했습니다.

책 <나비와 전사> 3장-5장을 각각 다뤘는데, 근대시기 성적 욕망의 통제와 연애, 소월과 만해의 여성-되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구한말에서 1910년대의 신문들을 통해서 주로 근대의 성담론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성인이 된 젊은이들이 부모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연애를 하고 순결을 지켜서 결혼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것이 흐르는 성적욕망을 통제하기 때문에 부자유스럽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근대시대의 기독교 교리와 민족주의가 이 담론을 뒷받침시켜줬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순결을 강조하였고, 결혼하려는 예비부부들은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뒤에 관청에 가서 결혼신고를 하는 과정이 자유연애와 자유결혼의 방식으로
제시됐기 때문입니다.  민족담론도 인종적이고 인구학적인 목적으로 국민을 관리하기 위해 성적욕망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고요. 지난 시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이번 장에서도 저자는 기독교와 민족을 같이 놓고서 분석하는데, 이것은 기독교에 대해 폄하하는 감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4장 연애편에서는, 좀더 각론으로 들어가 연애신화와 순결 강요에 대해 소설 <재생>의 봉구와 순영의 인물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심순애와 이주일을 연상시키는 두 주인공은 돈을 좇아 배신하고, 버림받아 다시 만나서 서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통속적인 연애사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삶의 현실에서 벗어나 사랑을 위해 목숨거는 식의 사랑은 결국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근대에는 이런 식의 죽음충동에 가까운 사랑이 순수한 사랑으로 일컬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족 담론 역시 '텅 비어있는' 개념인데도 죽음으로 뛰어드는 것이 연애의 구조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즉, 국가는 결혼안에서의 성만을 합법적으로 허용하여 국민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정신무장시키고, 내 자식과 아내의 성을 사적소유로 만들어둡니다. 내 가족을 지키고자 외세에 맞서 싸우러나가도록 함으로써 가장의 애국심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일부일처제 결혼제도가 근대의 산물임이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요즘같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도, 윤리적으로 순결을 암묵적으로 강조하는 한편, 성의 자유도 횡행한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성윤리라는 점에서 근대나 비슷합니다. 책에서도 나오는데, 10대들의 성, 스와핑 같은 성문화 역시 죽음충동에 이르는 황폐한 성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럼, 이처럼 순정적이지도 않고 권태롭지도 않는 연애는 연애에만 매몰되는게 아니라 동료애, 우정, 존경심 등등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랑을 함께 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들 전체가 적극 동감!ㅋ

소월과 만해의 '여성-되기'에서는 학교다닐 때 애독했던 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전체 분위기가 상기되었습니다. 
두 시인의 목소리는 기존의 여성성, 남성성에 갇히지 않고 성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여성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소월의 시에서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감을 존재의 무상함으로 끌어안는 여성성으로 나타내고 있고, 만해의 시에서는 절대자를 향한 사랑으로 생의 심연을 탐사함으로써 사랑을 '탈 영토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누구는 소월시의 에로틱한 접근이 좋고, 누군가는 만해의 시에서 신의 부재를 견뎌낸 '아빌라의 데레사'가 떠올랐다고도 했습니다.  
위대한 시인들의 목소리는 여성적일 수 밖에 없다. 승려였던 만해의 목소리가 상당히 영성 신비가들의 목소리와 닮아있었
던 것은 불교의 색다른 모습이었다고도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는,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의 이미지를 띄고 있기 때문에 성격상 여성성일 수밖에 없다고 지금 교회는 여성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도 전해졌습니다.

저자도 신과의 아가페적 사랑은 자아와 타자가 접속하고 변화되는 사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심오한 사랑!
끝으로,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들이 저 지경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유머의 기술을 습득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여성-되기를 시도하자며 마무리 지었습니다. 저자는, 판소리 <노처녀가>를 인용, 손과 다리, 귀가 장애인 마흔살 된 처자가 자신의 장애를 호탕한 웃음으로 긍정하고, 육십세가 돼서 1등 신랑감을 만나 자식까지 낳아 잘 살았던 여성처럼 되자고 제안합니다. 

모임후기를 정리하다 보니, 우리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못 나눴네요. 타자와 접속하고 탈 영토화하는 사랑이 있었는지 그리고 유머스런 인생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요. 하루하루의 삶이 길 위에 서는 시간의 연속이 아닌지요당신만의 '여성-되기'는 무엇인가요?

다음 모임: 8월 24일(금) 
책 <나비와 전사> 6-8장 

Posted by bau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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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ept 2012.10.17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영성모임에 참가할려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알려주세여 ㅠ

  2. 2013.01.26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2. 7. 21. 19:31

안녕하세요.

주말 잘 지내셨는지요.
오늘도 폭염이라지요.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하세요.

지난 금요일(22일)에 책 <나비와 전사>(휴머니스트, 고미숙) 1, 2장을 갖고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한달간 여행 마치고 오랜만에 뵈니 더 반가웠습니다. 매달 먹는 감미식당 밥도 더 맛나구요.ㅋ

먼저, 요약편으로 볼 수 있는 1장과 2장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함께 돌아가며 읽어가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모두 읽진 못하고 2장만 읽고 갔었는데요. 1장, 2장이 근대성이 함축하는 의미를 다루고 있어서 연관되었기 때문에
따라가기에 어렵진 않았습니다. 고미숙님 책은 수유너머 초창기에 책을 읽었던 적이 있고 호모시리즈 중 연애편을 읽은 적 있습니다.
<나비와 전사> 책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남다르지 않습니다..  고미숙님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지식으로 근대성에 대해 전개하고 있는데 (그날 나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1장은 한국 근대기에 놓인 철도가 (일본에 군수물자 이동의 목적도 있지만) 어떻게 인간의 삶의 속도를 높여 왔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장은 일제시대 당시 한국의 기독교가 어떻게 민족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는지를 <대한매일신보>와 같은 당시 언론매체의 칼럼을 인용하면서 크리스천 민족주의자들의 논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독립=성도, 악-일제) 그리고 교리상으로 하나님이 모든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은 자연만물의 주인이란 점에서 인간이성을 강조함으로써 이원론(정신-육체, 이성-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당시의) 기독교가 근대의 종교임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고속철도가 인간의 삶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것인데 지금은 누구나 해외나 타 지방을 왕래할 수 있게 한 기회의 평등(물론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자가 한정적이지만)을 갖고 온 측면이 있다는 점도 제기됐습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서는 다른 맥락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에도, 여행을 꿈꾸고 외국에  다녀왔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시대도 한편으로, '둘레길'이 유행하는 걸 보면, 속도를 멈추고 탈근대를 향한 욕망이 표출되는 게 아니겠냐는 점에서 지금시대는 근대와 탈근대의 욕망이 같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내가 처해있는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벗어날 수도 있잖아요.

아, 이 책에서 나오는 부분에서 '순간의 영생' 이 연상된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순간속에서 영원을 사는 영생의 진리가 저자가 말하는 탈-근대의 실천과 비슷해 보인다고 말입니다.

그럼 우리는 속도에 멈추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성과를 달성하려는 목적지향적 목표보다는 몰입해서 즐겁게 하다보면 어느새 중력에서 벗어나는 '도력'(언급된 예로, 영화 <와호장룡>의 주윤발이 대나무 가지 사이에서 무공을 펼칠 수 있는것)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계속해서 하늘문이 닫히지 않도록 하늘과 통하고 있어야 합니다.

부족하나마 여기까지입니다.^^
여러가지로 할 이야기가 많은 텍스트였습니다.
앞으로 이 책은 시간상 세 번에 나눠서 이야기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번에는 3,4,5장에 대해 에로스, 별, 은행나무님이 발제해오기로 했습니다. 다음 모임 날짜는 7월 20일(금) 입니다.

이번 주말부터 기다리던 비가 서울지방에 온답니다.
더위와 장마에 건강 조심하시고 다음 번에 뵈요.

Posted by bau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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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25. 13:23

언니와 빵집에서 빵과 차를 마시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언니: 남들이 못해본 쉽지 않은 경험을 해봐서 이제 세상에 무서울게 없겠다. 여행은 왜 번잡한 곳으로 가는거야. 나는 조용한 산사에 가서 도 닦고 싶다.

별말씀을요. 아니에요. ㅋ 응, 사실 몇 년 전부터 올해 선거끝나고 가려고 품었던 계획이에요. 그사이 음악과 그림을 좋아하게 돼서 실컷 문화생활이나 하고 오려구요. 그 사이에 아는 언니가 마침 그 나라로 이사가게 돼서 묵을 곳도 생겼고요.


언니: 그렇게 몇 년간 가졌던 바람을 이루는구나. 축하한다. 나도 3년안에 이룰 수 있는 바람이 생겼거든. 그럼 긴 거말고 한달, 세달안에 이룰 것 없을까.

언니 소망이 생겨서 축하해요. 꼭 잘 될꺼에요. 한달, 세달짜리.. 기도해봐요. 언니가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 또는 힘든 것, 또는 해결하고 싶은 것 등등 구체적으로 매일 시간을 내서 규칙적으로 기도하면 언니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떠오를 거에요. 단 짧게라도 매일매일 하는게 정말 중요해요. 몸에 익혀야 하거든요. 기도도 요가나 운동처럼 한번 탄력이 붙으면 몸이 잘 찢어지다가 며칠 안 하면 다시 마음이 분심하고 간사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되돌아와요, 그래서 매일 조금씩 날뛰는 상념거리들을 자신이 좋아하는 기도문으로 붙들어 주고 자신의 내면 깊숙이를 들여다 봐야해요. 인간이 정말 간사한게, 이날, 이런 상황 시시때대로 감정이 틀리거든요. 그렇게 잡아주지 않으면 악해진다고봐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자기 전에 두 번 씩 기도문을 읊고나서 자신의 기도를 하는게 좋은데. 그게 어려우면 밤에 자기 전 한 번이라도 해보세요. 그리고 낮에 시간 날때는 기도문이라도 속으로 집중해서 읊고요. 기도는 최소 20분 이상 하라고 하더라구요. 구체적으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어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속마음이 떠올라요. 그럼 그것갖고 풀어가는 거죠. 정말 자신을 솔직히 드러낼 때 기도가 구체적으로 되고 매일의 기도가 새로워져요. 정말 자신을 드러내고 내맡겨도 절대로 죽지 않아요. 부서지지 않거든요. 근데 에고때문에 방어벽때문에 자존심 지키느라 기도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언니: 타지에 가는데 무섭진 않으니. 항공운행, 범죄, 치안 등등.

좀 걱정 되죠. 근데 뭐 죽기야 하겠어요 ㅋ 몇년 간 마음속에 품어왔던 계획이기 때문에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이고. 제가 가야 할 곳이니까 가는 것이겠죠. 신이 인도해주시리라 믿어요. 솔직히 선거 끝나고 나서도 왜 저를 홀로 두셨는지 원망이 들더라구요. 적적하고 적막하게 홀로 대면하도록 내버려 두셨느냐고요. 그러고 나서 속상했는지 눈물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엉엉, 울었어요. 몇 십분을 그러고 나니 이해가 되었어요. 제 기도에 대한 순종이었어요. '순종' 철저하게 홀로 내 앞에 서라는 말씀, 어떤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고 따를 수 있는지를 시험하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 여행도 설레이고 기대돼요. 이번 주도 여행준비로 기도에 속도를 붙이기로 했어요. 떠나기전부터 준비하고 기도하면서 가야 거기서 만나는 상황에 의미를 빨리 알아차릴 수 있고 뭘 우선으로 봐야할 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몇 년 전에 비해 지금의 생활이 참 좋아요. 매일이 새로우니까요. 모두 기도 덕분이에요. 제가 지난 6개월 동안 여러가지 소용돌이 속에서도 역동적인 변화속에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기도로 제 중심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계속해서 새 소망을 품게 되고 인생에 새로운 챕터가 넘어가는 것도 말이에요. 언니도 꼭 해보세요.

언니: 조심히 다녀오고. 다녀와서 다음에 또 이야기 해줘.

고마워요. 네, 언니도 한달 간에 실천해보면서 느낀 이야기 제게도 들려주세요.^^

Posted by bau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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