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로만 듣다 음악감상에 직접 다녀왔다.
kbs 제1FM의 찾아가는클래식 FM <희귀영상으로 보는 명연주 명음반>을 들으러 7일(토) 춘천에 다녀왔다. 진행자 정만섭씨의 진행은 라디오에서 듣던 대로 잔잔하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소개로 감상할 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는데 충분했다.
1960년대 흑백영상부터 수십년 전 칼라영상까지,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대가들의 연주는 그들의 뛰어난 기량과 감성이 어울려 독특한 아우라로 뿜어져, 시공을 초월하여 관람장소인 한림대 일송아트홀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 파워와 정력에 온 몸이 그의 연주에 빨려들어갈 듯 했다.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콘체르토 No1 in Bb major op.23 3악장), 듬직한 풍채로 그는 마치 타악기를 흠씬 두드리는 듯 건반에 손을 붙이지 않고 재빠르게 건반을 두드렸다. 쉴 새 없이 건반을 때리는 연주는, 그의 별명 '강철의 피아니스트'다웠다.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멘델스존, 바이올린 콘체르토 e minor op.64 1악장)의 적확한 연주는 빈틈 없는 연주로 청중까지도 숨 죽여서 듣게 만들었다. 또렷한 눈동자, 한 치도 흔들림없는 눈짓, 정확한 팔놀림에서, 기량의 깊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에게 '완벽해서 신의 노여움을 살지도 모른다', 는 평이 붙었다고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 있으랴.
나의 바이올린 연주 취향은, 아름다운 선율을 좋아한다. 내게 바이올린이란 악기의 특색은 감성적이고 화려하다. 그래서, 나는 바이올린 악기의 특색에 어울리게, 아름다운 선율에 끌린다.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랐다는데, 마흔 아홉의 나이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지. 크리스티앙 페라스,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켜는 바이올린만 보면서 연주했다. 야사 하이페츠의 연주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와 비교한다면, 페라스의 표정은 별로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표정도 생생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표정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켜는 바이올린연주는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d minor op.47) 3악장. 곡 자체가 감미롭기 때문일지 모르겠으나, 아름다운 음색에 이 연주자의 다른 음악도 들어보고 싶어졌다.
피아노에 대한 나의 취향은 바이올린과 다르다.
이번 감상에서도 나의 취향을 역시나 확인할 수 있었다.
깔끔한 연주를 좋아한다. 나에게 피아노란 악기는 깔끔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악기다. 그래서 연주도 깔끔하고 정갈한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순전히 혼자 생각이다) 언젠가 우연히 들었던 미켈란젤리의 연주가 귀에 꽂혀 난생 처음으로 내 손으로 그의 음반을 샀다. 처음 내게 꽂혔던 피아노연주가 그래서 그런지, 당분간은 첫취향이 계속갈 것 같다.
이번 감상회에서도, 나에게는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피아노 연주가 정직하고 깔끔해서 좋았다. 주름 자글한 할아버지가 뭉텅한 손으로 연주하는데, 어쩜 소리가 깨끗한지. 왠지 그의 연주에서 그가 살아온 정직한 삶의 궤적을 더듬었다면, 오버일까?
이 외에도 소련 모스코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는 내공이 느껴졌다.
바이올린과 첼로 협주 역시 파워풀하고 역동적이었다. 첼리스트 로스토로포비치는 바이올린에 맞추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데,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라는 그의 명성에 손색이 없었다.
중간에, 피아니스트 손열음씨의 미니콘서트도 인상적이었다. 슈만의 환상소곡집 8곡을 연달아 연주했는데,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열정이 섞여 있는 음색은, 아직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더 들어봐야 겠다. 일단, 독특하다.)
모든 감상을 마쳤는데도, 가슴 벅찬 감동으로 금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아우라가 물씬 풍기는 대스타들이 나오는 농익은 흑백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11인11색이 펼치는 음악페스티발에 다녀온 것 같기도 했다.
다음 번에도 기회가 된다면 또 가고 싶다.
영상으로, 듣고 보는 연주, 독특하면서도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