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12 00:23

지난 주 ebs 일요시네마 <크로스 크리크>(미국, 마틴 리트 감독)를 봤다. 실존 소설가 마조리 키난 롤링스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소설가 롤링스는 소설을 쓰러 도시생활을 그만두고, 크로스 크리크라는 깡촌 시골마을로 간다.

오랜동안 버려져 있어 흉몰스러운 집과 오렌지농장을 흑인여성일꾼과 시골에서 만난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시 풍성하게 일궈낸다. 이렇게 그녀의 삶이 변하자, 그전까지 집착했던 공허한 로맨스 소설에서 생생함이 물씬 담긴 시골마을 이야기로 그의 글쓰기 주제도 달라진다. 몇 번이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해 시골에 묻혀 제대로 소설을 완성하려고 우연히 들어간 그 마을에서 새로운 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녀는 <아기사슴 이야기>(영화에 나온 그 사슴은 아닐까)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단다.

영화는 소설쓰기에 대한 애정, 황폐한 농장을 가구며 육체노동을 통해 흘리는 땀방울의 의미, 무뚝뚝하지만 아름다운 인간미를 가진 시골친구들과의 우정을 잔잔하게 그려나간다.
어떤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자연에서 삶을 일구는 그녀의 모습은 물론 훌륭하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그녀같은 외지인이 주변사람들과 관계 맺으면서 변화하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줬다.

 19세기 초반 인종차별이 심한 사회상황에서 흑인여성 일꾼과 나누는 자매애는 가슴뭉클하다. 나쁜 남자친구로부터 벗어나 무작정 일자리를 찾으로 들어온 흑인여성을 아무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가 훌륭하고, 그녀의 주체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따라 배우는 흑인여성의 자세도 그렇다.

남자친구를 끊고 완전히 새 삶을 살고 싶은 마음으로 롤링스에게 '자신을 붙잡아 달라'는 그녀의 솔직한 절규는 (전과 달라진 모습으로)당당하게 느껴졌다. 롤링스를 붙잡는 그녀를 통해 롤링스는 사람을 '버리는'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본다.
외지인의 눈에 보기에 아름답기 그지없었던 그곳에서, 절친했던 한 이웃의 쓸쓸한 죽음으로 그녀는 잠시 방황하지만, 시골동네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현지남자와 결혼한다.

이 영화는 에코페미니즘적이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물을 대고 보살피고 거두는 자연의 주기에 따라 살아가는 그녀. 외지인과 현지인, 흑인과 백인, 작가와 농부가 서로를 깔보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서로를 받아들이며 친구가 된다.
더불어, '똑똑하기만 했던' 그녀가 자연을 알고, 이웃을 알고, 인생을 알면서 성숙하고 온화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변모한다. 

삭막한 도시에서 사는 내게 그녀의 풍요로운 <크로스 크리크>는 한참이나 멀다. 그렇더라도, 육체노동을 좀더 늘이고, 작은 텃밭이라도 일궈보고,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후에 내게 그 땅이 주어진다면, 정착하는데 좀 나을테니까.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아름다운 여성으로 거듭난 미스 롤링스,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련다.

 

Posted by bau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