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셜 발레단, 발레 <오네긴>
클래식음반숍 풍월당에서 음악영화감상회로 본 영화 <오네긴>. 올 1월 LG아트센터에서
<오네긴>을 예약하고 난 뒤 우연히 이 감상회에서 영화로 먼저 보게됐다. 차이코스프키의 음악과 러시아의 흰 자작나무를 배경으로 한 결투신, 타티아니가 젊었을 때 앓았던 사랑의 열병과 후에 나이가 들고 오네긴의 사랑을 거절할 당시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여배우의 얼굴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만큼 영화의 아우라가 컸던 작품이었다.
요 전에 유니버셜 발레단의 공연을 직접 보게 됐다. 영화를 먼저 봐서 그럴까. 영화보다는 표정연기와 장면구성이 좀 느슨했다. 오네긴과 타티아니의 표정연기와 심리묘사가 더 디테일하게 그려졌으면 싶었다. 전반부에서, 오네긴이 연애편지를 여러장 고쳐쓰는 장면이나, 깜빡 빠진 잠결에서 오네긴을 만나 데이트를 하는 설정은 타티아니를 소녀같이 보이게 했다. 영화에서 훈육되지 않는 거침없는 그녀의 열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초반부의 타티아니에서는 엿보이지 않았다. 후반부 마지막 장면에서 오네긴의 사랑을 거절하는 타티아니의 심경을 그려낸 피날레는 전반부보다 연기가 거세게 나와 다행스러웠지만, 초반부부터 톤을 자연스럽게 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유니버셜 발레단은 작년에 보았던 <호두까끼인형>에서처럼 이번에도 군무에 꽤 신경을 썬 것으로 보였다. 이 발레단의 시각적 전략으로 보인다. 주인공의 작은 체격과 대비되게, 군무에서는 모두 체격좋고 화려한 외모의 수십명의 단원들이 무대를 꽉 채우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시각이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전체적인 흐름에 맞게 군무의 톤도 설정됐으면 싶다. 때로는 끼워넣는 장면같이 혼자 튀어서 감정흐름을 깨기도 한다.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오네긴>이 공연된다고 하니, 머지않은 날에 오리지날 <오네긴>을 꼭 보고 싶다.
독일 사샤 발츠단, <게차이텐>
내용설명을 일부러 보고 가지 않았다. 미리부터 정보를 알고가면 내 느낌이 방해받을 까봐서다. 유명한 발레단이란 명성과 홍보사진을 보고 간단한 타이틀만 보고 갔다. 발레보다는 현대무용을 더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은, 현대무용이 역동적이고 생동감있어서다.
십분쯤 늦었는데, 다행히 앉자마자 시작했다. 거친 숨을 고르고 땀을 식히는데, 1~2분간 음악없이 조용히 남녀가 짝을 이뤄 살금살금 방안을 걸어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했다. 비슷한 장면이 계속되면서 약간 지루해졌다. 조금 졸고 난 뒤부터는 전염병이 돌고, 화재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면서 무대위는 온통 아수라장이고, 난장판이다. 무용수들은 이러저리로 날뛰고, 서로를 밀치고, 밖으로 몰아내고, 의자를 집어던지면서 난동을 일으킨다. 계속되는 불안과 공포, 전혀 친근하지 않는 기괴하게 보이는 행동들...(무용수들은 중도에 서로를 욕하고 고함치는 대사를 많이 한다.) 무용수들은 극한 상황에서 감정을 계속 유지하면서, 춤까지 춰야 하니까, 얼마나 어려울까. 또 이것을 어떻게 무용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지도 어려웠다.
보고 나서, 기사를 찾아보니 안무가 사샤 발츠는 경제적위기, 생태위기, 인간관계 위기의 시대에서 인간의 모습과 재구성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한다. 리얼리즘의 무용이란다. 어느 평론가의 평대로, 그녀의 안무는 과감하거나 여과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덧붙인다면, 화재, 지진이 일어날 때 세트의 변화를 통해 극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면서 무용수들의 무용이 거기에 잘 녹아들어갔다는 점에서, 극무용으로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