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14 01:49

5/12(화)
[농촌공동체]

여성농민의 토종씨앗지키기 이야기
한영미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92년부터 농사짓기 시작했는데, 귀농공부는 아주 조금 했구요, 농업, 농촌의 문제점들, 농민들의 이주 등의 문제를 파헤치는 문제, 농민운동적 관점에서 학습을 하고 농촌현장에 들어갔다. 그러다보니까 지금까지 농업을 잘 모르고 계속 시행착오만 겪고 있다. 계속 시행착오만 하고 있고, 매일 한발 앞으로 갔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기를 고민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도 저희 경험이 여러분들에게 도움 됐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여기 왔다.

92년도에 저희를 맞아준 분들은 농민회 식구였다. 아는 분들이 있으면 정착하기 수월한데, 저희들은 농민회분들이 집 마련해주시고(축사에 딸려있는 관리사) 화장실, 거실 등을 만들어주셨다. 지금생각하면, 스카우트 비슷하게 된 것 같다...93년도에 4500평, 2000평(밭) 농사를 지었는데, 쉬운 게 아니었다. 우리가 지은 게 아니라 회원들이 지어주셨다.

정착할 때 농민들과 관계를 잘 맺는 게 (농촌에서)적응하기 쉽다. 농민들이 함께 도와주지 못하면 여기까지 못 왔다. 지역 단체, 지역 분들과 관계를 유기적으로 만들어가는 것, 함께 사는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을 저희들도 머릿속으로 그렸다. 여러분들은 미리 공부하시고 들어가니까, 저희들보단 훨씬 수월하게 정착하실 수 있을 것이다. 마을주민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

저희가 농사짓고 살면서 공동체실현에 어려움이 있다. 저희 기반이 농민회다보니 투쟁중심으로 가고, 외부를 향해서 요구하는 ‘운동중심’으로 하다 보니 안에서 채워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나는 반성이 든다. 이 방식도 현실을 살아가는데 중요하지만, 계속 이 상태 갖고는 원래 원했던 지속가능한 농촌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 평가를 보면서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시점이 2005년도,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시작한 토종씨앗지키기사업에서부터 입니다. 권영근소장님(농어촌사횡연구소)께서 95년, 96년도 횡성에 오셔서 토종씨앗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 해주셨다. 사명감으로 그것을 확보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저희가 그때 얘기 듣고도 실천은 못했다. 다수확품종은 많이 수확되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토종 씨앗지키기는 당장 하면 좋지만, 내 일은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2005년도에 농어촌연구소랑 함께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GMO반대운동의 대안으로 종자지키기 운동이 제안됐다. 그 당시에 원주와 안동교구에서 토종씨앗을 분양받아 심기 시작했다. 그때 ‘신림농협’(원주)에서(우리잡곡지키기운동본부에서 김규동 조합장이 잡곡축제를 하면서 신림일대에 잡곡농사를 지음). 그 씨앗을 받고, 많은 영감도 얻어 스무 명이 종자중요성에 대한 교육도 하고 같이 나눠 심었다. 처음, 커피스푼으로 한 스푼을 받아 스무명이 나눠 심었다. 소중하게 씨앗을 나눠 심었거든요. 수확하고 모이니까 씨앗을 안 갖고 오셨어요. 이유는 ‘새가 다 먹었다’, ‘심는 것 까먹었다’...유일하게 (여성농민 중에서) 홀로 농사짓는 할머니들이 아주 갈무리를 잘해서 한 대로 씨앗을 증식시켜 오셨다. 씨앗을 받아 다음에 농사짓게 하는 힘이 나이든 여성농민에게 있다. 이것을 젊은 농가들이 전수받지 않으면 종자주권을 실현하는 일이 어려울 것이다. 저희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여성농민회에 제안해서 씨앗을 나눠심었다. 처음 시작은 몇 분 안 되지만, 차차 확산이 돼갔다. 할머니들이 증식한 씨앗을 갖고 수수, 기장씨앗을 분양해 드렸다. 전여농에서 그 사업을 본격적으로 했다. 당연히, 확 퍼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횡성처럼 ‘같은’ 경험을 했다. 이미 농민들이 상업농업(농사로 경제생활을 하는 관행에 뿌리 깊다)을 하기 때문에 돈도 안 되고, 별도의 노동력을 들일 힘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뜻이 좋아서, 확산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상업농업 등을 뚫기 어렵다는 걸 실감. 그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여성농민회원들한테 씨앗지키기 중요성과 어떻게 증식시키는지에 대해 교육 한다. 시·군 마을에서 열정 있는 사람이 있으면 씨앗지키기가 돼요. 작년 같은 경우에는, 전시채종포를 운영하는 여성들이 생겨났다. 인드라망에서도 체험행사에 왔었다. 전시채종포운영하는 곳들이 생기고 좀 더 목적의식적으로 지키는 곳이 형성되다보니 올해는 전국적으로 도별로 한 곳씩 씨앗 지키기를 해요. 처음엔 어려웠는데, 퍼져나가면서 농업가치를 실현하는 권리가 여성농민에게 있다는 논리로 접근했다. 도별로 한곳 거점을 만드는 것, 이것은 인도연수에서 따왔다. 인도 최하층 천민모임 달릿에서 운동조직(여성, 남성 섞여있음)내에서 여성차별을 극복하고자 활동하는 여성농민조직(DDS?)이 씨앗공동체를 하더라. 인도가 댐이 많이 생기면서 농민들이 물 권리를 빼앗기게 됐다. 그래서 다수확품종은 가난한 농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가뭄에 강한 씨앗이 예로부터 있었던 기장이었다. 여성농민들이 놀리는 땅에 심고, 이익을 내면 동네에 레스토랑을 만들고 학교를 지으며 공동체를 일군 현장을 보았다. 교육에서 소외되는 여아들을 우선 입학하는 기준을 하는 걸 직접 봤다. 또 마을별로 종자교류소를 갖고 있었다. 저희들도 거점을 만들자고 한 게 도별로 1곳. 예를 들면, 경상남도는 함안여성농민회가 거점이고, 1차적으로 토종씨앗지키기 사업을 한다. 함안지역에 토종씨앗실태조사를 벌이고, 10개면에 회원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토종씨앗을 찾는다. 그 씨앗을 수집하고, 데이터를 뽑고, 복원할 씨앗을 고르는 실태조사를 일차적으로 한다. 전시채종포를 900평정도 운영한다. 모든 농민들에게 한 품종이상씩은 토종씨앗을 심으라고 교육한다. 회원들로부터 한 품종은 지켜줘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 (그 품종에서 거둔 수확물을)도시소비자들과 직거래하기를 병행했다. 작년에 전여농이 토종옥수수를 심고 소비자들에게 판 적이 있다. 흑찰이라고 한다. 서울환경연합에 벌레먹은 사과팀이라고 GMO연구팀이 있다. GMO대응활동으로, 수입줄이기만으로는 진정한 대안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여 실제로 옥수수자급률을 높이는 방안을 찾겠다해서 옥수수를 직접 심기로 했다. 옥수수는 다비성작물(비료를 많이 쳐야 함), 이왕 하는 것 토종옥수수를 해보자고 해서 6월에 제주도, 경상도, 강원도에 나눠 심었다. 토종옥수수는 키가 요만하면서 안 크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파느냐. 콩 코투리만한 것은 팔지 못한다 했는데, 먹어보니 진짜 맛있었다. 환경연합 200명 소비자, 어린이집 등에 직거래했다. 저희들이 수확할 때 멜라닌, 먹거리 파동 일어날 때였다. 어린이집에 팔 때 500원씩 팔았다. 강원도 찰옥수수는 수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쌌다. 30통에 2~3천원 나오는데, 저희들은 500원씩 팔았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옥수수크기가 보잘 것 없어)창피하다고 했는데, 소비자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아했다. 옥수수 한 알이 붐이 되니, 올해는 토종옥수수, 토종콩 등 하나씩 품종을 늘여가기로. 만원을 내면 만원에 상당하는 토종옥수수, 토종콩을 받고 일부를 토종기금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토종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토종하면 배타적인 것 같지만, 우리 자체적으로 대안을 만들어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 일을 해내니 이것들을 소비할 소비자공동체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더라. 92년도에 들어가서 계속 시행착오 겪었는데, 지금부터 나름대로 성과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토종옥수수 한통이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과 비슷하게 두부도 횡성에서 벌어진 게 있다. 횡성 텃밭두부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다. 똑같이 여성농민들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종자를 지키는 게 여성농민들의 가치와 권리라는 점이 있었다. 또 하나, 농경문화를 발전시킨 전통지혜, 전통지식들을 여성농민들이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먹거리에서도 장(류)를 만드는 등 가공능력은 대부분 여성농민들이 갖고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사장됐거나, 기업들이 가져가 버렸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기업한테는 열린다. CJ에서 일하는 직원도 농민의 지위를 부여받아요. 이제는 기업들이 농업에 투자하는데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요. 자본에게 빼앗긴 전통지식을 찾아오는 것만이 우리가 자급하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지킬 수 있다. 우리들은 사명감에 불타, 횡성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갖고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강정, 장 만들기를 배웠다. 처음에 만들어본 게 강정(다섯 가지 잡곡을 찌고, 말려 팔았다. 친환경농산물로 가공공장에 들어가서 오곡강정을 만들어 유통을 시킨 적이 있다), 그러나 얼마안가 (저희가) 시장을 잘 몰라 (시장에서) 아웃됐다. 옛날 어르신들은 소금에 일구거나 조청을 넣는데, (그러면)돈이 안되더라. (나름대로) 짧은 시간에 원재료를 확보해서 준비했는데, 그때 튀김음식들이 발암물질 나온다는 이유로 생협에서 사라진 아픔이 있었다. 다음시도가, 두부였다. 할머니들은 집집마다 가마솥이 있어서 직접 해서 잡수신다. 어떤 때는 두부가 물렁하고 어떤 때는 딱딱해 집집마다 만드는데 차이가 있더라. 두부 잘 만드는 할머니에게 전수받아 장날마다 두부를 판다. 1일, 6일 장날에 가마솥하나 사서 두부를 만든다. 처음엔 콩1말 갖고 팔면 두부가 스무 모 나오잖아요. 1년 정도 장날마다 두부 만들기 체험을 하니까, 원주 한살림에서 당시 <귀농자생계지원프로그램>을 갖고 계셔서 횡성두부를 팔아주겠다해서, 신이났어요. 처음에 장날마다 팔면서, 재미잇었다. 납품하기 시작부터는 가공, 규제싸움 등 해결할 게 첩첩산중이었다. 한살림매장에 나가는 것은 공장허가, 바코드받아야 하고, 유통에 문제가 없는 등 제반 자격요건을 갖춰야 된다. 공장설립, 바코드 받고, 영업허가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쭉 거치면서 재작년 10월에 세상에 나가게 됐다. 지금 두부가 1천원에 2모 주는데, 지역에서 생산한 콩을로 두부 만들면 무농약콩 아니라도 2천원이 단가로 찍혀야 일하는 사람들이 일당을 벌 수 있다. 실제 안 된다. 무농약 콩으로 해도, 소비자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고. 그때 여성농민회가 주축이 돼 두부공장을 설립, <지역순환영농조합법인텃밭>을 만들었다. 1구좌, 20만원 이상 출자로 참여해서 함께하는 공동체로 만들었다. 1구좌에서 100구좌까지 조합원출자로 공장을 설립했다. 조금 전에 이야기한 생산원가에도 맞지 않는 가격으로 일반시장과 경쟁을 했다. 한살림에서도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대에 맞춰야 해서 우리처럼 영세한 데가 소규모로 (그 가격대를)맞추기는 힘들었다. 두부는 계속 만드는데 일하는 분들이 인건비를 가져갈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어렵게 됐을 때, (저 뿐만 아니라)몇 분들이 텃밭두부 살리지 않으면 구호로 끝난다고 생각했다. 전여농이 ‘텃밭 살리자’로 홍보하고 교육을 했어요. 도시에서, 지역, 교회, 어린이집에서 두부 열모를 사주시는 운동을 했다. 그 배경에 여성단체들의 힘이 있었다. 두부 열 모씩 팀을 꾸려, 택배로 부쳤다. 처음에, ‘1주일에 1모 먹기’하면서 점점 전국흐름이 생겼다. 그러다, 서울 강동에서 횡성으로 체험활동을 왔다. 두부를 먹겠다고해서 그날 하루 여섯 개 지역에 열모씩 부쳐달라고 했다. 거점을 여섯 개 만들어주셔서 지금은 1주일에 100모 이상 나간다. 강동시민연대에서 두부오는 날은 회의를 한대요. “두부 1모가 이렇게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갈 줄이야” 라고 하신대요. 시민연대가 활기를 띄고 있다고 해요. 다음에는 소고기공동구매도 조직을 해주셨다. (강동시민연대는 지금도 촛불을 밝히는 단체.) 무항생제 축산으로 키우고, GMO사료 쓰지 않는 한우로 공동구매를 해줬다. 품목이 두부, 고기, 채소로 늘어났다. 그러면서 도시를 살리고 농촌을 살리는 시점에 사회적 일자리를 신청했어요. 몇 번에는 떨어지고, 올해 사회적일자리 신청했어요, 6개월 한시적으로. “얼굴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우리텃밭”(http://cafe.daum.net/godjs)이 사회적 일자리사업의 구호예요. 텃밭으로 가장 안전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예를 들면 강동시민연대의 텃밭은 횡성이예요. ‘우리텃밭’이 잘되려면 횡성공동체에게 자양분을 줘야지 도시소비자도 잘 살 수 있다는 개념이죠. 우리텃밭이, 처음에는 지역특산물(여성농민생산 우선), 제철농산물을 보내줬다. 지금까지 4번째 물품들이 나가고 있다. 두부, 청국장, 비지 등과 유정란, 채소(질경이, 민들레 등 채취해서 꾸러미에 넣어준다), 가공품 등을 넣어 보낸다.

불교귀농학교졸업생들이 인턴사원으로 4분이 들어와 있다. 세농가가 도시소비자 30명을 책임 질 수 있게끔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품목에서도 조금씩 다양성을 높여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귀농하시면 주변분들 잘 보시고 뜻을 잘 세워놓으면 좋겠다.

<여성농업인센터>는 2002년도 농민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92년도에 농사지으러 들어갈 때 막막하더라. 애 낳았는데, 지역에 어린이집 하나 없고. 홍천까지 애를 데려다줘야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저만이 아니라 전국 여성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구조가 안된다. 보육시설 없는 면단위가 전국에 500개란다. 2002년 <여성농업인센터>에서 가족갈등, 지역갈등 등 갈등해결상담, 영유아보육사업, 방과후아동지도사업, 자아실현프로그램 등 4가지를 필수사업으로 했고, 소득증대사업은 이외 사업으로 배치했다. 그 사업하면서 많은 꿈들을 꿨다. 이것 해보자하면 처음에는 안 되다, 나중에는 뜻이 모아지더라. 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명감 갖고 하니까 정착할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 농촌에 내려가시면, 위축되지 마시고 주변을 살펴서 내 뜻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찾아 꿈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다.

<질문>

- 어린이집 만들었나요?

<보리어린이집> 만들었다. 공부방 이름은 <쌀보리>. 아이들에게 이름을 공모해서 만들었다. 센터가 정부보조는 받지만 힘들다. 박봉이라 교사분들은 마음을 열고 오세요. 이러면서 7~8년차 되세요. 그분들을 이직시키면 안 돼 끊임없이 신심을 불어넣으려고 한다.(웃음).

- 사명감이 없으면 못할 일들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선, 농민회가 무엇을 하는 곳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몇 개가 있나요? 토종씨앗의 생산성이 외국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두부의 수익성?

여성농민회는 올해로 20주년 됩니다. 여성들의 자주적 결사체로서 여성농민의 지위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만들어 졌다. 한국에서 농민을 대변하는 단체는 대개 많아요. 한농연(후계자들에게 정착자금 주는 곳), 농촌지도자회(농진청), 생활개선회 등, 품목별 조직도 많아요(가축, 채소 등 품목별 전국조직). (두부 맛이 좋습니까?) (어린이집에서 오신 분이 “네, 정말 맛있습니다”) 택배비포함해서 2천300원입니다. 작년 10월 기준으로 인건비로 월60만원을 드릴 수 있는 수준이 됐습니다.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콩은 국내산을 원칙으로 하고, 무농약입니다.

토종씨앗의 생산성이 사실 떨어집니다. 거의 많은 분들이 생산성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도태되는데도 불구하고 심은 이유가 분명히 있겠죠. 옛날 맛을 못 잊어 심어요. 아삭하고 단 오이 맛을 잊지 못해, 잡곡종류는 병치료에도 좋아서 계속 농사짓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김규동조합장님은 잡곡이라하지 않고 ‘약곡’이라고 하세요. 양구에서 있었던 일이예요. 고추품종 중에 ‘마니따’가 있어요. ‘마니따’ 품종은 한 봉지에 2천싹 나오니 농가들이 많이 심었어요. 지금은 4만원, 가격이 계속 올라요. 병충해 강하다는 것은 5만원대. 생산비가 월등히 높아진 거예요. 그래도 기후변화 때문에 판판이 고추농사 망해요. 신종을 섞으면 전해보다 수확이 낮아요. 지금은 잡종을 엄청 심고 나서 다음에 심으면 뭐가 뭔지 모르는 게 생겨요. 종묘사에 산 것 갖고는 다음에 못 심어요. 여성농민 한분이 ‘마니따’로 계속 심은 거예요. 그분이 형질을 고착화시켰어요. (저희는 자랑스럽게) 농민들을 ‘육종가’로 부른다. 그 고추가 맛도 좋고 상품성도 좋아 ‘진고추’로 이름 붙여 상품성되는 고추로 만들어놓았어요. 저희가 올해 횡성에서 그것을 2천 싹 이상 심었어요. 6~70년대 다수확 품종 선호하면서, 전에 것 다 버리면서 지금 이런 거예요. 다수확하면서 산지 폐기 일어나잖아요. 기업들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농사는 자기를 갉아먹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자는 게 토종씨앗지키기운동이다. 상품성이 떨어지더라도 해보자, 도시농업에서도 많이 한다. 단순히 농민들만이 아니라 국민들이 함께 지켜야 한다. <토종씨드림네트워크>(http://cafe.daum.seedream)에서 하고 있거든요. 씨앗교류 등 다양한 전통농법등도 알 수 있으니 들어가 보세요.

- 실상사 귀농학교에서 옥수수를 토종으로 안 심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여성농민들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일을 하고 계셔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횡성 안에서 여성농민은 얼마나되요?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농민들의 수와 연령대?

전 농민의 52%가 여성이라고 합니다. 횡성에서 공동체 이야기하면서도 자신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저희가 운동하는 단체잖아요. 외부시각이 좀 꺼려하는 부분이 있어요. 색안경을 끼고 하는 부분이 있어, 여성농민회로 하는 부분들은 적구요. 월례회로 정보교류하는 분들이 15분 있구요. 지역사회에서 터잡고 계신분들은 생각바꾸는게 어렵더라구요. 그나마 어르신들은 농사짓는 경험있고, 애틋함있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세요. 농촌에 젊은 분들(부농)은, 가치중심으로 가는 농업에 대해 말하면 콧방귀 끼세요. 그분들과 함께 하지는 못해요. 그래서 귀농하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더 실감해요.횡성에 오시는 분들 보면 지역을 알려고 하는 자세가 있더라. 전 국민이 농촌으로 귀농할 수만 있으면 세상이 조금바뀔 것인데, 지금 320만인데, 600만이 넘었으면 좋겠단 상상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귀농하신 분들의 역할이 기대된다. 센터도 그렇고 여성농민회도 변화의 중심에있어요. 아직 작지만 외부에서 들어와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어린이집에 들어가는데 회원 자격 있나요?

농촌에는 다양한 사람이 살아요. 농민이 아닌 사람이 반이상, 공무원처럼. 어린이집은 농업인 자녀를 우선으로 받지만 농촌에 살면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자녀들도 받아요. 반반 정도.

(돈을 받나요?)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간식비지원 정도로 받아요.

<천기원 실무자의 덧붙임)현장귀농학교에서 가장 인기좋은 곳이 횡성입니다. 횡성지역에서 모델이 소개되고 있어 모셨습니다. 횡성의 자랑이 한우가 아니라 텃밭이다고 저는 자랑합니다. 다음까페에 보면, <우리텃밭>에 이런 내용이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 보세요. 텃밭두부는 아주 맛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공동구매 하시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bau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