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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의 가공, 농가 살림살이 더하기
정현숙 (정읍농부, 전북녹색연합 공동대표)
처음 귀농했을 당시에 집에 전기가 안 들어와 고생 정말 많이 했다. 핸드폰, 오븐, 컴퓨터...모두 사용하지 못했다. 전기 없이 못 살겠더라. 일기예보를 못 듣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일을 하기도 했다. 전기충전 드릴 등 전기 없이 3년간 살았다. 나름대로 많은 것을 느끼고 살았다. 갈멜 수녀원에서 양초를 주문해서 양초로 불 켜고 살았다. 양초에 여름 되면 날벌레들이 뛰어든다. 딱해서 못 본다. 그때는 잠도 참 많이 잤다. 겨울에는 다섯 시 되면 사방이 어두워져 잤으니. (지금 생각해보면)대개 웃기게 살았다. 그러다 한살림을 하게 돼서 정읍이사장을 6년간 했다.
(난) 원래 농사를 잘 지을 사람도 아니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귀농하기 전에 대체의학, 요가를 좀 배웠다. (시골로)가기 전에는 캠프, 발효식품, 번역 등을 조금씩 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살다보니 (내가) 농사를 열심히 짓더라. 처음 몇 년 동안은, (시골에 있으면, 날이 밝으면) 밖이 궁금해서 잠을 못 잔다. 밖이 어슴프레 보일 때 나가서 밭에 호미들고 나가고, 대개 농사를 열심히 지었다. 그러다 한살림 하면서 밖에 다니고 있지만, 지금도 농사는 열심히 짓고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귀농하시겠지만. 평생 동안 잔뼈가 굵은 분들과 정말 다르다. 콩농사할 때 처음에는 비닐도 안 했다. (조금한 평수)이만큼 농사지으면 두 번을 김매야 했다. 처음에는 풀이 안보였어요. 그 옆에 풀이 깨알같이 올라오는데, 한나절이면 안 보인다. 콩이 나온다. 며칠 후에 보면... 동네 아줌마들이랑 품앗이 하는데, 동네아줌마들이랑 김매는 속도가 다르더라. 한 10분되면 차이가 난다. 그들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계산대로) 김이 매지지 않는다. 이틀 일거리가 하루하고 사흘 미루면 일주일 일거리가 된다. 그럼 일부분 포기하게 된다. 봄에 심을 철 되면 (맘이)설레 콩 많이 심지만, 꼭 포기하는 부분이 있다.
...제가 귀농할 때랑, 지금은 참 많이 바뀌었다. 귀농관심도 참 많아졌다. 꼭 귀농이라기보다는, 생태적으로 사는데 초점을 많이 둔다. 지자체, 농업기술센터 등 귀농학교를 많이 연다. 그쪽에서 여는 귀농은 대부분 상업화된 귀농, 국가정책과 나란히 가는 귀농, 산업화 쪽으로 방향이 맞춰져 있다. 참여하는 분들도 은퇴 겸, 전원생활겸, 제2의 이모작, 삼모작(창업겸)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분들이 많다. 옛날의 귀농학교는 비교적 단순하게 진행된 것에 비해, 지금은 이처럼 다양하다.
된장 가공하는 분들도 전국적으로 많아요. (제가 정읍농식품가공협회(?)만들었는데요...) 장류 가공의 좋은 점은, 공장허가가 비교적 쉽다는 점이다. 지금은 허가를 받으려면 공장이 있어야 된다. 전통장류는 비교적 허가가 쉽다. 가마솥, 장독대 수준으로 설비가 갖춰지면 통과된다. 음료수는 제조, 포장기 등 제조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전통장류는 포장 등 구비시설이 별로 없어도 된다.
언젠가 전라북도 높은 분이 오셔서 브리핑을 하시더라구요. 그 취지가 식품과 농업을 긴밀하게 연결하는데 뜻이 있거든요. (그렇게) 진짜 해야 해요. 우리나라 식품업은 옛날에 대기업이 뛰어들지 않았어요. 김영삼 정부 때 만두제조하면서 뛰어들었어요. 그전에는 중소기업규모에서 많이 했어요. 지금은 대기업들이 하면서 원재료는 수입하니...
제가 유기농 하다보니까 진짜 가공하고 싶은 게 많아요. 무우시래기도 허가를 받지 않으면 무허가 불량식품이 된다. 진짜 기분 나쁘다. 사실 농가에서는 가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콩농사 짓기 참 힘들다. 재주 좋은 사람은 1만원 받지만, 농협에서 3천원 받는데. 그 농사 지어서 그 돈 받으면 얼마나 기막히나. 그런데 청국장가구를 만들어서 팔면 1kg에 3만원 받는다. 몇 배의 소득이 만들어지잖아요. 허가 안 받으면, 벌금형을 받는다. 제가 아는 사람은 100만원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다. 판매처도 많았는데 인터넷 단속에 걸려 죄를 시인해서 벌금을 100만원 받았다. 그래서 허가를 받는다. 얼마나 복잡한 줄 아느냐. 세금계산, 생산실적, 자가품질검사, 교육...별게 다 많아요.
배상면주가 측에서 쓴 칼럼을 본 적 있다. (그 글에서)우리나라에 전통주류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통 국세청에서는 밀주단속을 하고, 대형주류업체에서는 (전통주류를) 막고 있다. 그런데 과수농가에서는 짜투리 과일송이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걸로 술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정읍에서는 내장산 복분자주 업체 10군데가 모여서 공동허가를 받는데요. 다른 농가들은 자격요건이 힘드니 엄두를 못 낸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농가마다 포도주, 치즈 만들어 판다면서요. 농가가 그렇게 팔더라도 와인공급의 3%밖에 안 된대요. 아시는 분이 천안 근처에서 제조한 포도주를 가지고 오셨는데, <포도즙>라벨을 붙여서 왔더라. 천안 입장(?)에서 한집이 허가를 받았고, 나머지는 무허가다. 알음알음으로 대부분 판다. 우리나라 농촌을 볼 때는 엄청난 비극이다. 농가들이 올릴 수 있는 소득을 못 올리고 기업으로 넘어가 있고, 기업은 절대로 국산 안 써요. 면피용으로 순창고추를 쓰는데 있지만, 몇 년 전에 보면 국산 아니었어요. 옛날 순창군수가 강의를 했는데, 우리나라 고추장 시장이 50조원인데, 순창 청정원이 부분 차지하고 있다. 순창고추장 전부가 수입이래요. 최근에는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지자체에서 나서니까. 한 번 씩 마트에 가면 봐요.(원료가 국산인지 수입인지를)
마트에 진짜 (제품)종류가 많아요. (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똥 사먹는다”
(제가)단식프로그램을 했는데, 자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명상하는 친구가 “사람들은 살인을 하거나 자살에 대해 굉장히 의미를 둔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살면서 내가 가진 생각, 말, 음식으로 다른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데는 무시한다”. 마트에 안 먹어도 괜찮은 게 무수히 많은데, 마트에 물건이 정말 많아요. 보리강정, 보리떡을 사봤어요 (보리에 관심이 있어서). 전부 수입품 쓴다. 식품업체는 수입하면 단가가 무지무지 싸니까. 식품산업과 농업이 완전히 동떨어져있다. 농촌에서 진짜 살기 힘들다. 그때랑 지금이랑 쌀수매가가 더 안 올랐다. 쌀수매가가 40kg 기준 10만원 대로 내려간 적이 있다. 십년동안 우리나라 물가가 올랐는데, 쌀은 15만원 하락됐다.
(시골에서)살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규모 영농하는 분들은 10만평 하면 기계로 밀어버린다. 그럼 쌀값이 10만원 가도 괜찮다고 했다. 농사 많이 지을수록 유리하다. 전통적인 가족농은 진짜 살기 어려워요. 저도 별것 다하고 있는데.
저도 초기에 땅이 천평 넘게, 임야 3천평이었어요. 임야를 전으로 바꿨어요. 개간해서 차밭을 가꿔서, (제가) 녹차를 대개 잘 만들어요. 감이 굉장히 많아요. 가을에 감따러 오세요. 저희집 자연조건이 제가 가공 안 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감잎차, 감염색, 감식초, 감장아찌, 곶감, 감말랭이 등을 한다. 뽕나무가 많아요. 이곳저곳으로 일하러 쫓아다니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요.
비탈에 경운기가 뒤집을 정도로, 비탈이 구불구불해 농사짓기는 안 좋아요. (희한한 인연으로) 남편은 영농조합법인총무, 작목반 총무를 하게 됐어요. 몇 년간 고생하고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참여한 분들이 빠져버려서 팔자에 없는 비닐하우스 8개동을 하고 있어요. (김종철선생님은)당장 때려쳐라. 비닐피복도 안 하던 저희들이, 비닐하우스를 짓게 됐어요.(웃음) 비닐하우스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유익한 점이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을 찾고 계획을 잘하고 3년 되니 틀이 잡혔어요...
농사 지으면서.. 친환경영농조합, 액비공장, 작목반...그 길이 참 힘들었다. 꼭 그렇게까지 안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작게 짓지, 그렇게 왜 기를 써는지 잘 모르겠다. 오늘 강의하러 오기 전까지 농사일을 하다가 왔다. 그렇게 힘들게는 하지 마세요. 저는 농촌에서 할 수 있는 걸 다했다. 양을 키웠다. 소박하게 양젖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한 마리 키웠는데, 새끼는 한 마리 낳죠. 목에 줄을 못 매서 우리 양들은 항상 서너마리는 됐다. 아침 되면 사료 좀 주고, 하루 종일 쏘다니고, 저녁이 되면 산꼭대기에 가서 잔다. 양 종살이 했다.(웃음) 시간 못 맞추면, 올라 가버리고 없다. 젖을 안 짜면, 불어서 가시에 긁혀 (마음아파)못 본다. 이걸 짜면, 한쪽에 수백 번을 짠다. 만약 두 마리를 짜면 한 마리 3리터가 나온다. (짜는 게 힘들어)손목이 나간다. (집에서 양젖을)안 먹어서 치즈 만들고 냉동시켜 팔기도 하고 여러가지를 했다. 몇 년 동안 유실수를 했다. 양들이 새순이 올라올 때 그때 먹어요. 몇 년간 심은 나무가 하나도 없어요. 심지어는 숫양은 송아지만 해요. 대나무 껍질을 벗겨 먹어 나무가 다 죽어요. 양이 녹차를 안 먹는단 얘기를 들었는데, 그것도 먹어요. 짐승들도 천부인권 있어요. 뭐 먹나보면, 쑥 연한 것 먹고, 민들레 먹고, 새순만 귀신같이 먹어요. 흑염소는 울타리 쳐도 초토화시켜 버린다. 양들은 ‘귀족’처럼 좋은 잎만 골라 먹는다. 그런데, 차잎을 먹는 걸 보고 안 되겠더라. 양들을 정리할 때, 남쪽에서 연락이 왔다. 스위스종 양은 모기에 약하다. 숫양은 모기 물리면 척추 마비된다. 해발 4-500미터 올라가면 피해가 없다. 팔려고보니, 남쪽에서 연락이 왔다. 양이 놀랄까봐 트럭위에 천막을 씌워 갔다. 내려주고 갔는데, 산 밑 집인데, 무심코 봤더니 양의 집이 조립식 판넬로 송아지 한마리 돌아눕는 크기더라. 그 다음날, 양이 죽었다고 소식이 왔다. 제 맘대로 살다가, 작은 집에 들어가서 억장이 무너져 죽은 것 같다. 그 양들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짐승은 웬만하면 엄두가 안 나요. 축산, 비닐하우스,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골고루 한 것 같다. 한살림 한 것도 우연히 녹색평론 독자모임에 가서다. 오래된 미래, 김종철평전집 등을 읽었어요. 아줌마들은 공부 안하고 싶대요. 뭘 만들고 싶어 했어요. 다른 아줌마들 이야기 들어보니, 시골살고 싶어서, 남편이 철학과 나와서 농업기술센터취직을 해서 사표내고 농사짓는 사람들이었어요. 우리들은 책을 던지고, 만들기 시작했다. 각자 만들고 싶은 걸 서로에게 가르쳐주고. 두부를 만들자, 콩 담가 맷돌에 갈아 솥 걸어놓고 아줌마 모셔놓고 두부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우리끼리 두부를 만들고, 각자 집에서 두부를 만들었다. 저는 통밀빵 만들기 가르쳐주고, 한 아줌마는 떡 찌는 것을 배우고. 염색배우자. 한 집에 모여 책을 사서 황토, 홍합, 댓잎 재, 쑥, 감, 치자, 다섯 집 돌고나니까 천연염색 마스터 했다. 저는 캠프강사까지 나갔다. 정읍시내까지 두부 만들어서 공급했다. 후에 우리밀 빵을 만들었다. 두부 회원이 150명. 된장, 청국장, 콩나물을 주문하면, 배달해줬다. 자활, 유정란팀도 있었어요. 이렇게 하다 생협 만들자고 해서 자체 생협 하려니까 인력이 모자라서 한살림으로 옷을 입은 거예요. 처음엔 정읍에 있었고, 전주회원이 계속 늘어나서 전주매장을 냈다. 정읍, 전주 매장이 지금은 1500가구 넘어섰고, 한 달 매출이 1억 정도 늘었어요. 올해 2월부로 한살림을 그만두고, (집안일에 신경을 쓰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어요. 올 초에 저희 집에 가스폭발사고가 있어요. 식구가 9명이 살아요. 공동체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이룰 욕심은 내지 않았어요. 사람마다 소유욕, 정서가 달라 기대를 안했는데, 이상하게 때가 됐나 봐요. 산촌유학을 했는데, 처음에 한명, 두명이 왔고, 다시 그들이 왔어요. 애 2명, 그의 엄마, 서울이불공장부부, 수녀님(70대) 등이 살아요. (가스폭발은 어쩌다?) 식구가 많아서 손발이 안 맞았어요. 오기로 약속한 날짜에 수녀님이 왔어요. 집은 폭발해서 거주할 데가 없는데, 수녀님이 오셨어요. 여러 가족들 살림도 내 준적 많습니다. 떠나시면서 저희 집에 짐들을 두고 가셔서 저희 집 창고에 모두 가득가득, 모든 게 다 있어요. 저희 집이 폭파해서 방이 하나밖에 없어요. 벌판 컨테이너에서 남편은 자고, 이불공장했던 부부들은 텐트에서 살고, 2층 방은 수녀님이 계시고. 집에 여자가 4명 있으니 깨끗한데, 남편은 1명뿐이네요. 그렇게 ‘뒤죽박죽으로’ 살고 있습니다.(웃음)
(직접 만든 녹차를 나눠주시며)녹차를 씹어보세요. 제가 명품녹차를 만듭니다. 좋은 녹차를 만드는 비결은 농사자체에 있어요. 하동, 보성에 녹차가 많지만, 비료주고 농약 치면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어요. 원래 녹차는 심어서 거름도 안주고 녹차를 덖어보면, 다른 차 만들기 기본이 되요. 녹차가 제일 까다로워 힘들어요. (차솥 온도가 300도 넘는다)차 솥에 물을 떨어뜨리면 바삭 타는 온도에서 차를 덖어요. 차잎을 따면 처음에 장갑을 껴서 빨리 뒤집어요. 차잎이 안 타야 되고, 모든 잎이 다 익어야 해요. 모든 줄기 부분이 다 익어요. 갈색이 남아있으면 잘 안 익은거죠. 쑥차는 온도가 안 높고 익기만 하면 되요. 녹차는 덖고 비벼야 한다. 세게는 안 비비고, 두 번째는 낮은 온도에서 덖고. 다음에 또 다시 비비고, 세 번째는 더 낮게, 네 번째는 더 낮게. 아홉 번까지 덖을건 없어요(어린잎). 꼭 9중9포가 의미 있는 건 아니고. 맨 마지막에는 불 약한 상태에서 씹어서 바삭할 때까지 놔야 합니다. 줄기부분까지 바삭한 상태로.
중국은 차나무 하나하나를 키워요. 우리는 밀식재배로 기계로 키우잖아요. 차잎을 빨리 생산하기위해 비료주고, 잎을 회복하기 위해 약주고, 비료주고 물주면 차잎은 금방 자라요. 어떤 자리에 가도 늘 제가 만든 차를 가지고 다닙니다. 일찍 먹을 차는 알맞게 덖고, 많이 덕은 것은 두고 먹을 때 좋다. 지금은 뽕잎 차 만들 때. 약이 되는 차는 서리 맞은 뽕잎이다. 어린 순으로 만든 뽕잎 참 좋아요.
지금은 가공할 게 무궁무진하게 많아요. 무시래기 공장도 수입이 괜찮대요. 농가에서 무팔 때는 시래기는 안 쓰고요. 나물도 말리는 게 가능하고. 제가 요즘은 무엇 하냐면, 볶은 곡식을 만들어요. 건강식품이죠. 인터넷에서 유명한 강원도 홍영선()? 볶은 곡식은 난치병도 고쳐요. 곡식을 쪄서 말려서 볶아요. 압력솥에 밥해서 푹 익혀서, 바싹 말려서, 볶는 온도가 중요해요. 속이 푹 익는 고들밥이 좋아요. 현미, 흑미로. 수분을 섭취안하고 1일 2식으로 이걸 먹으면 병을 고친대요. 고구마 구워서 먹고, 빵도 구워서 먹고. 병을 고치고, 독소를 내 보낸다. 저희 집에 먹여봤더니 안 좋아하네요. 아직 대중적인 아이템은 아닌 것 같아요. 가격은 250g, 8000원, 300g, 8000원 정도 합니다. 두꺼운 후라이팬에 한줌 깔릴 정도로 중불보다 좀 센불에서 볶으세요. ...
이제 드디어 사업을 하려고요...작년에는 침을 배우고 기공을 배웠어요. 뜸, 침, 사혈, 부황합니다. 제가 할려고 하는 건 단식프로그램을 돌리려고 했는데, 쉬면서 소식하는 거예요. 제 컨셉은 ‘짱박히는’ 집입니다. 황토방을 몇 개 만들어서 ‘짱 박혀서’ 전기는 등 켤 정도로 주고, 최소한도로 밥 주고. 보조적으로 채식, 단식을 하게 하고요. 건강한 사람은 차를 같이 마시고. 찜질방을 꼭 만들 꺼에요. 전통식은 솔잎을 두껍게 깔아서 땀을 내게 하는 거예요. 가마솥에 쑥을 끓여서 목욕하면 정말 좋아요. ...(끝)
<질의·응답>
97년도에 귀농을 하신 결정적인 동기는?
제가 몸이 안 좋았습니다, 몇 년간 요가, 단식, 명상을 집중적으로 해서 몸이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서울에 가보니까 숨도 제대로 못 쉴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매연을 피할 데가 없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일산에 살면서, 약수터다니고 족탕, 요가 등을 하면서 도시생활의 한계를 느꼈어요. 혼자 살면서 죽 아파트에서 살았다. 마흔 넘으면서 아파트가 대개 싫어졌습니다. 슈퍼가면 채소 종류도 똑같고, 슈퍼에서 사 먹는 게 싫어졌습니다. 서울서 별 볼 일이 없으니까 재미가 없었어요.
살 길은 시골이고, pc통신 나오니까 시골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하고자 하는 것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는 돈, 조직, 요령도 없어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은데요. 앞으로는 귀농해서 6년 정도 지나면 setting이 다 돼 있을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도 이 계통에서 운동을 했습니까?
아뇨. 제가 한 살림 일을 한 이유는 나이가 많고, 남들 보기에도 어울려서입니다. 저도 일을 잘하지 않는데, 지금 시민단체에 몸 바쳐 일할 사람이 없어요. 회원 된 지가 오래됐고, 저희는 사는 것 자체가 비누, 치약을 안 써요. 다른 식구들이 너무 깨끗하니 세재를 쓰는데. 우리 아들이 12살인데, 평생 샴푸를 세 번 썼어요. 남편은 특별히 인식이 있다기보다는 혼자 있을 때도, 비닐봉지에 있는 음식은 먹지말자 주장으로 살았대요. (생태적으로 사는) 이런 삶이 익숙해 있었습니다.
된장에서 물은 별로 안 중요해요?
왜 정월달에 장을 담느냐 하면 정월 물이 좋아서예요. 10월에 콩농사를 지어 온도가 메주뜨기에 알맞아요. 두세 달 지나 정월달 물이 가장 좋아요. 물 중에서 육각수가 좋은 물인데, 5도시 이하에서 나오잖아요. 옛날부터 가장 좋은 물은 얼음 녹은 물, 눈 녹은 물이래요. 대장균 없고, 우리 몸에 좋은 상태예요. 정월달 물이 1년 중 제일 좋은 물이예요. 잡균도 없고, 물의 성질이 한번 얼어있다 녹으면 60도로 올라가도, 그 성질이 그대로 있대요. 계절적으로 정월에 장을 담는 것은 그 이유예요. 또, 장을 담을 때 생수, 자연수가 좋죠. 수돗물로 한다면, 24시간 받아 윗물만 쓰세요. 좋은 물을 미리 준비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된장 맛의 비결은 메주 잘 띄우고, 간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소금도 중요해요. 수입소금은 나트륨성분이 전부라 끝 맛이 쓰다. 메주는 공기가 중요해요. 냄새를 흡수하기 때문에. 그래서 도시보다 시골이 낫죠.
제가 하고 싶은 걸 모두 하고 계셔서 부럽네요. 혹시 거기 가서 배울 방법이 있을까요?
배우기보다는 와서 살아보셔요. 집이 만들어지고 나서는 부담이 덜 되고, 지금은 좀 복잡하네요.
산촌유학을 하신 계기는?
제 아이가 수곡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이 학교 너무 좋아요. 전체 학생이 지금은 50명정도예요. 100% 친환경급식해요. 지원을 받아 황토방교실도 지어요. 진짜 이 학교 선생님들이 열심히 하셔요. 벽지학교에 가선점이 있어 전국에 우수한 교사들이 몰려요. 전교사들이 수업명장에 가슴이 따뜻하세요. 농촌학교라서 주말되면 아이들 나오라고 해서 교장선생님이 일요일에 출근해서 노래를 털어요. 애들하고 놀아요. 이 학교가 매스컴을 타서 아토피 아이들이 와서 치료된 사례가 있어요. 5학년 초에 전학 온 학생이 코와 얼굴이 구분이 안될 정도로 심했어요. 이 학교 애들이 같이 밥을 먹는 게 놀라웠어요. 작년에 수학여행을 부산으로 갔는데, 담임선생님이 그 아이 엄마한테 목욕법을 배워 목욕을 해줬대요. (게다가,) 선생님이 감자를 가져가서 애 먹을 거를 직접 해줬어요.
그 학교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0명이 있어야 되요. 내년에 입학생 0명되면 폐교되거든요. 그래서 산촌유학을 결심했어요. 고산에 유명한 곳이 있어요. 아난다마르 수련원이 있어요. 산촌유학쪽으로 하고 있는데, 거기서 자원봉사하는 엄마들을 만났어요. 더 시골로 유학보내고 싶은 엄마들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그 학교를 폐교로 안 만들고 싶어서 애들 2명이 와서 있어요.
중학교는 있나요?
풀무고등학교에 계셨던 임낙준 목사님 고향이 부근인데, 농업학교를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희는 애를 학교를 안 보내고 서당으로 보내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요. 서당에 보내 10년 공부해도 괜찮아요. 놀아도 괜찮은 것 같아요. 강화 마리학교 황선진 선생님이 100일학교 하세요. 100일 동안 탈학교한 애들을 위한 프로그램, 참 좋아요. 옛날 화랑정신에 근간을 두고 심신수련을 해요. 지리산수련, 찬물수련, 대체의료, 집짓기 등. 탈학교애들도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 같애요. 경쟁에 안 물들이고 있는 애들이 가끔 있어요. 서로 연대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어요. 중학교까지 제도권 속에 안 넣고 싶어요. 아난다마르가 출가수행자들이 몇 분 있어요. 거기에 보내 세상구경하게 할 수도 있고요.
옛날에 (제가)한문공부한 맛이 정말 좋았어요. 평생 재산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남편은, 15살 되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하고 말해요. 대학갈 정도 나이에서 인간이 해야 될 공부는 철학, 신학, 물리학 등을 해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인간의 본질, 자연의 본질을 생각할 수 있는 공부를 젊을 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은 정보의 형태이고, 필요한 것은 지혜를 닦는 공부입니다. 지금 어린애들은 그 시스템으로 살아남는다고 장담할 없다. 정말 자기 뜻을 갖고 사는 게 가치 있습니다. (끝)